옷장 속 인문학_김홍기

2019. 3. 4. 23:04책과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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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의 역사에서 핏(fit), 즉 맞음새가 스타일링의 요소로 등장하게 된 것은 19세기 후반인데, 이처럼 19세기 후반 이후 스타일에서 맞음새를 중시하게 된 사회적 배경.

19세기 후반의 사람들은 이전 시대 귀족들의 과시적 낭비에 대한 강한 미적 반감을 품었다. 그러다 디자인의 정확성과 기능의 효율성을 강조하는 실용적인 의상제작 방식이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자수를 높는 데만 6개월이 걸리는 등 옷의 겉모습만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이전 시대와는 결별하게 되었다. 특히 20세기 들어 실용주의와 더불어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생태학에 기초한 미학이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그리고 맞음새, 신뢰성, 기능성 같은 가치가 중심인 사회로의 전환이 이뤄졌다. 옷은 정신의 견고한 외피여야 한다는 생각이 패션계 곳곳에까지 퍼지며, 옷 자체의 구조성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한 벌의 코트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 이유는.

유물론을 통해 실재를 파악하고 역사를 해석한 칼 마르크스에게도 코트는 중요한 사물이었다. 1849년 영국으로 망명한 그는 런던 빈민가에서 일곱 명의 자식과 함께 조그만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아픈 자식들이 죽어가도 손을 못 쓸 정도로 가난했다고 한다. 당시 그의 주요 수입원은 몇 개의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게 전부였고, 형편없는 원고료로 가계를 꾸려가기에는 너무 버거웠다. 그때마다 그는 전당포에 자신의 프록코트를 저당 잡히고 식료품을 샀다. 하지만 전당포에 코트를 맡기는 날에는 그가 글을 쓰러 자주 갔던 대영도서관 입장이 불가능했다. 당시 대영도서관은 코트를 착용하지 않은 자들의 입장을 불허했다. 크토가 없는 사람은 그만한 품위와 격식이 없는 사람으로 봤기 때문이다. 결국 친구인 엥겔스가 돈을 보내주면 마르크스는 코트를 되찾아 입고 도서관으로 갔다. 그 때 도서관에 틀어박혀 집필한 책이 바로 <자본론>이다.

 

▣ 인상적 장면

할머니가 되면 난 자주색 옷을 입고, 빨간색 모자도 쓸거야.

맞지도 않고, 어울리지도 않겠지만.

연금으로 브랜디, 여름 장갑, 새틴 샌들을 살 거야.

그러고선 버터 살 돈이 없다고 말하겠어. <제니 조셉, 경고>

 

결핍의 시대를 온몸으로 거치며, 노년기가 되면 제대로 누리지 못했던 삶을 누리겠다는 의지의 시를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지금의 나는 적당히 저렴한 SPA 브랜드를 입고, 적당히 저렴한 식당을 다니며 많은 불만을 품고 살고 있지만, 후일의 희망이나 의지는 없다. 나는 20세기 중반의 지은이 보다 못한 21세기 패션업계 종사자다. 점점 확대 될 그레이마켓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준비해야 겠다.

그리고 내일은 빨간 스웨터를 입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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