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파랑_천선란
2024. 12. 19. 12:20ㆍ책과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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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
SF가 보통 기술의 발전과 미래를 예견하는 장르라면, <천 개의 파랑>은 그 반대편에서 잊혀져가는 존재들을 깊이 응시한다. 이 책은 인공지능과 인간, 그리고 그 사이의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작품이다.
주요 문구
콜리는 이 집에 사는 인간들을 한 명, 한 명 살폈다.
전부 다르고 독특한, 이를테면 파랑노랑 하늘이거나 분홍보라, 초록빨강의 하늘 같은 인간들이었다.
천 개 이상의 단어를 알고 있었다면 이 인간들을 표현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도 없었을 텐데.
"그리움이 어떤 건지 설명을 부탁해도 될까요"
"기억을 하나씩 포기하는 거야."
"마음을 떼어낸다는 게 가능한가요? 그러다 죽어요."
"응. 이러다 나도 죽겠지, 죽으면 다 그만이지, 하면서 사는 거지."
"그리운 시절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거야."
"행복한 순간만이 유일하게 그리움을 이겨."
현실의 무게감이 몸을 눌러 아무것도 빠져나가지 못했다.
그것은 몸속에서 흐르지도, 버릴 수도 없는 물로 오래도록 고여 있었다.
비린 냄새가 났다.
새벽에 잠이 오지 않아 몸을 뒤척일 때도 속에 쌓인 슬픔이 찰랑거리며 비린내를 풍겼다.
슬픔이 비림으로 바뀌자 후에는 꺼내려고 해도 비릿해서 꺼낼 수 없어졌다.
그렇게 계속 몸에 담아두었다. 고여서 비려질 때까지. 끝끝내 썩어 마를 날을 기다리면서.
꿈속에서 보경은 계속해서 비린내를 맡았다. 길 주변이 온통 물이었다. 주변이 저수지로 변했다.
물고기도 살지 않았다. 깊이도 가늠할 수 없는 컴컴한 저수지였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길 끝에서 무언가가 다가왔다. 다르파였다.
다르파는 호랑이 같은 몸짓으로 보경에게 다가왔다.
입에는 다 타버린 장갑이 물려 있었다.
너 말고.
보경이 다르파에게 말했다.
너 말고 그 사람 오라고 해봐.
"내 시간은 멈춰있어."
화재가 난 빌딩 속에 있던 소방관을 기다리던 그 시간에 멈춰 있어. 반드시 살아서 나오리라 믿고 있는 그 시간 안에서.
시간이 흘러 보경은 그곳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시간은 그곳에서 1초도 흐르지 않았다.
보경이 매일 일찍 일어나 쉬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이유는 그 지긋지긋한 시간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음을,
그곳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달리기였음을 인정해야 했다.
시간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정적이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수면 위에 돛을 펼치고 있었다.
비린 눈물이 얼굴을 가로질러 베개로 떨어졌다.
인간의 눈이란 같은 것을 바라보고 있어도 각자가 다른 것을 볼 수 있었다.
콜리는 인간의 구조가 참으로 희한하다고 생각했다.
함께 있지만 시간이 같이 흐르지 않으며 같은 곳을 보지만 서로 다른 것을 기억하고, 말하지 않으면 속마음을 알 수 없다.
때때로 생각과 말을 다르게 할 수도 있었다.
끊임없이 자신을 숨기다가 모든 연료를 다 소진할 것 같았다.
감상과 생각
<천 개의 파랑>은 인공지능 로봇과 인간뿐만 아니라 과학천재, 소방관, 말(경주마)까지 다양한 시점과 감정을 풀어낸다.
책 속 모든 등장인물과 심지어 로봇, 말에게까지 감정을 이입하며 읽었다. 책을 덮은 후에는 이 작품이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이라는 사실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특히 비린냄새와 눈물은 구절을 볼 때마다 가슴 안에 뭉클함이 차올라서 사색하기가 힘들어진다.
"당신의 하늘은 어떤 색인가요?"
이 책은 각자의 하늘을 떠올리게 하며 긴 여운을 남긴다. SF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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